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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크레덴스 베어본이라는 이름의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인해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습니다. 부족한 것 없는 왕자의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성격이 다소 오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왕자가 잠이 들려 했을 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르지 않았는데 찾아오는 하인들에게 짜증을 있는 대로 내곤 했던 왕자가 화가 나 문을 벌컥 열자, 거기에는 로브를 써 얼굴이 가려진 정체불명의 인물이 서 있었습니다.

 

“누, 누구냐?”

“당신에게 경고를 하러 왔습니다.”

“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어떻게 왔지? 적국에서 보낸 첩자인가?”

“제 앞에선 소용없습니다. 저는 마법사니까요.”

 

로브 아래로 날카로운 여인의 눈빛이 보였습니다. 왕자는 당황해서 한 발 물러섰지만, 곧 다시 목소리를 높여 비웃었습니다.

 

“마법사? 그런 동화에나 나올 법한 존재를 믿으란 말인가?”

“당신이 아무리 재색을 겸비한 일국의 왕자라 한들 그 영혼은 오만한데다 초라하기 짝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시겠습니까.”

“어리석게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보구나. 경비병!”

 

왕자는 소리높여 외쳤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시종을 부르는 종을 울려도, 비상 호출용 끈을 잡아당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제야 왕자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 앞에선 소용이 없다고.”

“어.. 어떻게 할 셈인가?”

“당신의 목숨을 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 반성은 하셔야 할 것 같군요.”

 

마법사가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휘두르자, 왕자의 온몸에 격심한 통증이 일었습니다. 그대로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왕자에게 그녀는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 자만심이 꺾일 만한 마법이 좋겠지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으, 으윽.. 내게 대체 무슨 짓, 을..”

“이 마법을 풀 조건은 세 개. 첫째, 당신이 호감을 품은 상대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을 것. 둘째, 한 침대를 쓸 것. 셋째, 키스를 받을 것. 이 모든 것이 만족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그 모습으로 살게 될 겁니다.”

“무, 무슨 모..습..”

“싫어도 곧 알게 되시겠지요, 거울을 보면.”

 

그녀는 왕자를 뒤로 한 채 성을 빠져나왔습니다. 왕자는 어쩌지도 못한 채 그대로 고통 속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편, 옆 나라에는 뉴트 스캐맨더라는 이름의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학구열이 높은 데다가 마음씨도 고왔지만, 궁궐 안에서는 항상 외로웠습니다. 동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아무리 말해도 왕과 왕비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고, 그를 이해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처럼 전쟁에 앞장서서 나가 이름을 떨치거나, 사교계에 진출하기만을 기대하는 부모님에게 왕자는 질려 있었습니다. 몰래 성에서 빠져나와 수풀이 무성한 숲을 거닐고,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그의 몇 안 되는 낙이었습니다.

 

“니플러, 안 돼! 그건 할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야!”

 

그 중엔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는 동물들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니플러에게 반지를 빼앗긴 뉴트 왕자는 당황해서 니플러를 좇았습니다. 니플러는 약올리듯 뉴트를 이따금 돌아보며 뽀르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고 다녔고, 왕자는 악시오를 언제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 때,

퐁당.

니플러가 그만 반지를 나무 아래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아... 어떡하지, 물 아래 가라앉은 물건을 찾는 마법은 딱히...”

 

연못 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던 왕자는 다시금, 풍덩, 이번엔 뭔가 조금 더 큰 것이 연못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시 후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을 보며 왕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쁜 연두색의 개구리가, 입에 반지를 문 채 올라와 앉아 있었으니까요.

 

“나, 날 위해 주워 준 거야? 고마워!”

 

왕자는 환히 웃으며 반지를 받아 품 안에 소중히 넣고는, 니플러를 가볍게 혼냈습니다. 비록 니플러는 별로 혼나고 있는 걸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정말.. 귀엽다고 뭐든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제 집에 가자.”

 

왕자는 니플러를 어깨에 얹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뭔가 마음에 걸려 뒤를 돌아보고는, 이 쪽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오고 있는 개구리를 발견했습니다.

 

“따라오는 거야?”

 

개구리, 정확히는 마법으로 인해 개구리의 모습이 되어 버린 크레덴스는 겁이 났습니다. 거절하면 어쩌지. 다른 이를 거절한 적은 많았지만, 거절당할까봐 두려운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뉴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개구리를 보았습니다.

 

“네가 양서류긴 하지만 뭍에서는 살 수 없어. 연못으로 가는 게 좋을 텐데.”

 

하지만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왕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말을 걸어 왔습니다.

 

“하는 수 없지. 내 가방 안에 습지도 있으니까, 오늘 밤은 거기에서 잘래?”

 

크레덴스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방 안에 습지가 있다고? 어쨌든 그가 자신을 받아 준 것만으로도 그는 안도했습니다. 손을 내밀자 얼른 올라탄 개구리를 보며 뉴트는 다시 환하게 웃었습니다.

 

“예쁘다, 너. 꼭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아마 지금 인간이었다면 얼굴이 새빨개졌을 거라고, 크레덴스는 생각했습니다. 외모에 대한 칭송은 질릴 정도로 들어 왔기에, ‘예쁘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흔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개구리의 모습으로 들은 말이어서인지, 이 사람에게 들어서인지, 이 말을 해 준 그야말로 한없이 예쁜 모습으로 웃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이유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뉴트는 나무 아래에 숨겨 둔 가방 앞에 멈춰섰습니다. 그러더니, 가방을 열고 그 안으로 발을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크레덴스가 깜짝 놀라 뉴트의 손에 꽉 매달리자, 다독이며 말했습니다.

 

“놀랐니? 나는 마법사야. 다친 마법동물들을 보면 보호하기도 하고.. 여기 니플러도 마법동물이야. 부모님은 안 좋아하시지만.”

 

‘마법사’라는 단어를 들은 크레덴스는 잔뜩 경계했습니다. 그가 알아 온 마법사란 자신에게 저주를 건 존재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곧 그의 마음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응, 엄마 왔어, 엄마 왔어.”

 

엄마를 자청하며 수많은 동물들을 쓰다듬어 주고, 먹이를 먹이는 뉴트에게 크레덴스는 진심으로 반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마음씨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사람을 그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 내가 원래 모습이었다면 당장 청혼했을 텐데. 그러나 저주를 풀 조건 중 아직 하나도 이루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크레덴스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 때, 뉴트가 오랜만에 그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습지는 여기야. 다들 마법생물이라 네가 있기 괜찮으려나.. 나쁜 애들은 아니야.”

 

그제서야 뉴트가 가리킨 습지라는 곳을 내려다보니, 몸집이 자신보다 다섯 배쯤 큰 동물들이 이 쪽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손에서 내려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매달려 떨고 있는 개구리를 보고 뉴트는 안심을 시키려 했습니다.

 

“괜찮아, 조금 있으면 친해질 거야.”

 

하지만 개구리는 꼭 붙은 채 내려가려 하지 않았고, 그제서야 뉴트는 습지의 동물들의 태도가 그닥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 무서울 수도 있겠구나. 격리용 막을 씌워 줄게.”

 

당연히 이건 크레덴스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발버둥을 치는 개구리를 보며 뉴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왜 이렇게 나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애들이 많지, 하면서. 그는 작은 휴대용 어항에 물과 흙을 채워 그 안에 개구리를 앉혔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자, 됐지?”

 

만족한 듯한 개구리를 보며 뉴트는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다시 어항을 향해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배고프지 않니? 마침 저녁 시간이네.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는 곧 빵과 버터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빵을 작게 한 조각 떼어 어항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빵을 조금씩 먹는 개구리를 보며 뉴트는 미소지었습니다.

 

“곤충이 아니라 미안해, 지금은 마침 떨어져서.”

 

빵에 버터를 발라 먹는 뉴트를 보며 크레덴스는, 이것도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걸로 칠 수 있는 걸까, 하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 때, 뉴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코트를 입었습니다. 안 되는데, 이대로 헤어져 버리면. 애타게 우는 개구리를 보고 뉴트는 곤란한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가 버릴까봐 그러는 거야?”

“...”

“이제 성에 들어가 봐야 해서 그래. 몰래 나왔거든. 이 가방채로 들고 가서, 내 방에서 다시 펴고서 들어올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

“약속할게.”

 

새끼손가락을 살짝 내미는 뉴트를 보며, 크레덴스는 어쩐지 가슴이 아렸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착할까, 고작 연못에서 주운 개구리인데 왜 이렇게까지 따뜻하게 대해 주는 걸까. 어쩌면 정말로 그가 사랑하는 동물들의 ‘엄마’같은 존재여서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습니다. 크레덴스는 멍하니 어항의 둥근 유리 너머 일그러져 보이는 가방 속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진귀한 동물들이 각자의 둥지에 있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동물?

아까 지나오면서 본 동물들 중, 어디선가 본 적 있었던 동물이 있었습니다. 책이나 그림에서 본 게 아니라, 직접 만난 적이 있는 듯한.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크레덴스는 아래를 내려보았다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는 그 ‘동물’을 보고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이윽고 가방의 문이 열렸습니다. 뉴트는 바로 개구리가 들어 있는 어항을 향해 걸어와,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에게 다시 웃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많이 기다렸어? 뛰는 것 봐, 얼마만에 만났다고 이렇게 반가워하니.”

 

그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오면서 어항도 같이 가지고 왔습니다. 계속 자신과 붙어 있고 싶어하는 이 신기한 개구리를 앞으로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면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개구리는 뉴트의 곁에 있고 싶어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인사를 하려니 또 폴짝폴짝 뛰며 뭔가를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개구리를 보며, 뉴트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내 옆에 있고 싶은 거야?”

 

그 말에, 크레덴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움직임을 본 뉴트가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어항을 들고 와 침대에 앉고는 물었습니다.

 

“너,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이 있니?”

“...”

“설마... 마법 같은 거에 걸린 건가.”

 

쿵, 크레덴스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런 마법은 걸지 못하지만.. 그런 저주를 거는 마법사들의 존재 정도는 아니까.”

“...”

“내게 마법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는 거니?”

 

크레덴스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뉴트는 그 반응이 긍정임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재차 물을 때마다 개구리는 끄덕이기를 반복했으니까요.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데, 네가 말을 하지는 못하는 거니?”

“...”

“그래서 마법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아는데도 내게 전하지를 못하는구나.”

“...”

“곤란하네. 뭐가 있을까... 키스라든가?”

 

풉, 정곡을 찔린 크레덴스는 그만 뿜어 버렸습니다. 그걸 본 뉴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되게 인간같은 제스처를 하네. 정답인가보네..”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뉴트를 보는 크레덴스는 어질어질해졌습니다. 설마 이렇게 금방 문제의 핵심에 이르다니. 하지만 정말? 정말 지금부터 키스를 하게 되는 건가? 정말? 끝없이 자문을 하고 있으려니, 뉴트가 손을 뻗어 왔습니다. 여전히 어지러운 가운데, 크레덴스는 그의 손에 올라탔습니다.

 

“해 보지 뭐. 아.. 개구리랑 키스를 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 원래는 개구리가 아니겠지만. 그럼, 잘 부탁합니다.”

 

뭘 잘 부탁한다는 거야 이 사람은, 하고 당황할 새도 없이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이 와닿았습니다. 그러자 펑 연기가 터지고, 개구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깜짝 놀란 뉴트가 자욱한 연기 속을 살펴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뭐지? 정말 마법이 풀린 거야?”

 

연기가 점점 사그라들고,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뉴트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검은 머리칼에 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 자신을 향해 미소짓고 있었으니까요.

 

“누.. 누, 누.. 누구세요?”

“감사해요. 저는 크레덴스 베어본이라고 해요. 이웃 나라 왕자죠.”

“아, 그.. 행방불명됐다던!”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하던 뉴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악수를 청했습니다.

 

“아, 저, 저는 뉴트 스캐맨더에요.”

“그건 아까 들었잖아요.”

 

경황없이 내민 손을 꼭 맞잡은 채 놓지 않는 크레덴스를 보며 뉴트는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개구리의 모습인 그에게 했던 말과 그에게 보인 행동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눈 앞의 그가 자신을 어쩐지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더더욱.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평생 개구리로 살 뻔했어요.”

“아.. 처..천만에요. 도움이 되어 드려서 다행입니다..”

 

지금 대체 내 표정이며 말투는 얼마나 바보같을까, 진땀을 흘리는 뉴트를 물끄러미 보던 크레덴스가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마법은 풀렸으니, 작은 거짓말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저.. 염치없지만 부탁을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네?”

“아직 마법이 완전히 풀린 게 아니라서요.”

“아직도 뭐가 남았어요?”

“네. 그래서.. 한 번 더 키스해 주실 수 있나요?”

“.. 네, 네?”

“부탁해요..”

 

뉴트의 얼굴에 확 열이 몰렸습니다. 개구리니까 먼저 키스할 수 있었지, 어떻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당신에게 키스를 하라는 거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마법이 완전히 풀린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가 풀어줄 수 있다니까, 스스로에게 말하며 가까스로 용기를 냈습니다.

 

“그.. 그럼 진짜 완전히 풀리는 거 맞아요?”

“네.”

“아.. 알았, 어요..”

 

뉴트는 눈을 꼭 감고 크레덴스의 입술에 입술을 맞댔습니다. 그 순간, 그의 두 팔이 뉴트의 가느다란 허리를 꼭 끌어안더니, 그대로 뉴트에게 뜨겁게 키스를 해 왔습니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뉴트는 곧 그의 품 안에서 그를 받아들이며 떨리는 숨을 연이어 들이마시고 내쉬었습니다. 한참 동안 뉴트를 놓아 주지 않던 크레덴스가, 이윽고 그를 안았던 두 팔을 풀고는 손을 꼭 잡으며,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하고 있는 뉴트의 앞에 오른쪽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스캐맨더 왕자님.”

“뉴.. 뉴트라고 불러요.”

“뉴트.”

“네.. 네.”

“저와 결혼해주실 수 있나요?”

“.. 뭐, 뭐라고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말문이 막힌 뉴트에게, 크레덴스는 고백을 계속했습니다.

 

“당신을 좋아했어요, 전부터.”

“전..부터..?”

“당신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만난 적이 있어요. 오래 전에.”

“...”

“아주 지루하고 따분한 파티에서였죠.”

 

 

15년 전, 크레덴스가 아직 꼬마였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웃 나라들의 귀빈들이 모여 회담을 가진 후 열린 파티에 크레덴스도 억지로 끌려와야 했습니다. 따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그만 가자고 조르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나 인적 드문 발코니에서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뭔가 복슬복슬한 것이 와닿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가, 처음 보는 긴 털이 난 동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뭐, 뭐야 넌!”

 

경계를 하는 크레덴스에게 그 동물은 다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 촉감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크레덴스는 어쩐지 다시 와락 눈물이 났습니다. 동물은 더욱 가까이 와 그 짧은 팔로 크레덴스의 상체를 감싸 주었습니다. 이렇게 포근하고 안심이 되는 게 얼마만인지 몰랐습니다.

 

“두걸! 어디 갔어, 두걸!”

 

그러다 멀리서 들려온 소년의 목소리에 얼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곧 이 쪽을 향해 달려오고는, 크레덴스를 감싸고 있던 그 동물을 보고 미소지었습니다.

 

“이 아이를 달래 주러 온 거야?”

 

자신보다도 그 동물을 향해 먼저 말을 거는 소년을 보고 크레덴스는, 별빛이 사람이 되어 내려온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둠 속이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이따금 반사하는 빛과, 동물을 향해 따뜻하게 웃는 두 눈, 그리고 두 뺨 위에 별자리처럼 내려앉은 주근깨. 한참 동안 자신을 보는 시선을 그제야 눈치챈 소년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걸었습니다.

 

“아, 안녕. 얘는 두걸이라고 해.”

“아.. 안녕.”

“놀랐어? 평소에 볼 수가 없는 동물이라 더 그럴 거야. 얜 착한 애야. 모성애가 강하거든.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있으면 꼭 가서 보살펴 줘.”

 

그 말은 이 동물이 나를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을 했다는 거겠지, 까지 생각이 미친 크레덴스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 소년이 자신을 보고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서 더욱.

 

“그나저나 큰일이네. 마법 생물을 머글이 본 기억을 남기면 안 되는데, 난 아직 오블리비아테를 못 쓰는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으음.. 그러니까, 얘는 아주 특별한 애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면 안 돼. 오늘 얘를 본 건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알았지?”

“응.”

 

고개를 끄덕이는 크레덴스를 보고 소년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미소가 순간 반짝 빛나는 채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한 공주며 왕자들을 봐도 이렇게까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소년이 두걸의 등을 도닥이며 크레덴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해 왔습니다.

 

“그럼 난 가야 할 것 같아. 두걸, 빨리 돌아가자.”

“가.. 가지 마.”

 

급하게 소맷자락을 잡은 크레덴스를 보고, 소년은 당황한 듯 머뭇거렸습니다. 뿌리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서 있는 소년에게, 크레덴스는 용기내어 말했습니다.

 

“너랑.. 같이 있고 싶어.”

“...”

 

어둠 속에서도 소년의 뺨이 붉어지는 것이 똑똑히 보였습니다. 망설이는 듯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소년은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지만.. 마법 동물을 너무 오랫동안 여기 노출시킬 수가 없어서. 다음에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이.. 이름이 뭐야?”

“뉴트 스캐맨더야. 너는?”

“크레덴스 베어본. 꼭 다시 만나자.”

“응, 다음엔 더 오래.”

 

소년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더니, 다시 복도 건너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크레덴스는 소년이 뛰어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본 채로 언제까지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

“기억이 나나요?”

“그래요, 그 때 두걸이 너무 멀리까지 가서 걱정했는데..”

“역시 동물을 중심으로 기억하네요.”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일부러 살짝 원망섞인 목소리로 장난을 치자, 바로 손사래를 치는 뉴트가 귀엽다고 크레덴스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뉴트가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 시작하자, 방금 장난을 쳤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기뻤어요. 가지 말라고.. 나랑 같이 있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었으니까.”

“..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요. 지금도..”

“...”

“그래서, 대답은요?”

“어, 그..”

 

한참 동안 머뭇거리던 뉴트가, 크레덴스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그, 그래도 갑작스러워서.. 결혼은..”

“하긴..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그럼, 연인부터는 어때요?”

 

크레덴스는 뉴트의 손을 잡은 채로 참을성있게 뉴트의 답을 기다렸습니다. 길게만 느껴진 기다림 후, 뉴트는 작게, 하지만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요.”

 

기쁨에 가득찬 크레덴스는 그대로 일어나 다시 뉴트를 꽉 끌어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그렇게 두 왕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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