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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가 뉴욕을 떠난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두말하지 않고 떠나갔다. 직접 마중을 나간 티나는 배가 떠나기 직전 돌아섰다. 오래 볼수록 헤어지기 어려울 뿐이었다. 신비한 동물을 이끌고 뉴욕에 나타난 영국인 마법사는 짧은 시간 많은 사건을 일으킨 후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마법 사회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미국 마쿠자의 고민을 해결하고, 뒤이어 도망친 그린델왈드도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천둥새가 비를 내리는 동안 마법사들은 거리를 정리했다. 우그러진 철근을 펴고, 무너진 벽돌을 다시 쌓았다.

“그런데.”

“…….”

“국장님은요?”

“…뭐?”

“국장님은 어디에 계신 거죠?”

누군가의 한마디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애써 모른 척 한 것인지. 그 누구도 퍼시발 그레이브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퍼시발 그레이브스는 마쿠자에 기둥과 같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찾아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건 일개 오러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린델왈드는 체포한 이후 그레이브스를 찾는 일은 대통령과 윗선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린델왈드는 뛰어난 마법사였고, 어중간한 오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련했다. 그랬기에 마담 피쿼리가 직접 움직여서 그레이브스를 찾고 있었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

“오늘도 아무 말을 하지 않더군.”

“국장님에 대해선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숨기고 싶어 하는지.”

“…….”

“계속 추적해보지. 기억을 추적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그레이브스 국장이 사라진 시간을 꿰어 맞춰보도록 하고, 그린델왈드의 처분에 대해서도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분명 어딘가 흔적이 남아있을 겁니다.”

“…….”

“그리고 곧 찾을 수 있을 거고요.”

마담 피쿼리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누군가는 이미 국장이 죽었다고 믿을 수도 있었다. 그린델왈드의 성격으로 과연 곱게 놔두었겠는가. 대답은 긍정적이지 못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금의 단서라도 있어야 거슬러 올라갈 텐데,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러다 보니 답답한 것은 서로 마찬가지였다. 그린델왈드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그를 조사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레이브스.”

“…….”

“어디 있는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국장은 괜찮을 겁니다.”

“그래야 할 텐데.”

“…….”

“다시 추적을 시작해보죠.”

“네.”

시간이 지날수록 국장의 생존 확률은 떨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린델왈드가 체포된 이후 그와 접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남자를 잡아넣은 공간에 쉽사리 타인을 들이는 것은 그린델왈드 답지 못 한 것일 테고, 그렇다는 말은 그레이브스가 홀로 방치되어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오랫동안 갇혀있으면 큰일이 난다. 거기에 더해 상처라도 입었다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마담 피쿼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렇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는가. 사실 그것부터 의문이었다.

“…….”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안개가 들어찬 새벽의 숲을 걷는 것처럼 손끝 감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퍼시발 그레이브스는 강한 사람이니 당연히 살아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속절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도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찾아야 할 곳은 너무 넓고 시간은 짧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점점 조급해졌다.

계속 숨기기만 하면 어느 순간 터지기 마련이었다. 한 오러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가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켰다. 애써 모른척하던 것을 직접 들으니 불안함이 배가 되었다. 수군거림은 더 커졌고, 결국 누군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국장님이 혹시 이곳에 안 계신 건 아닐까요?”

“…….”

제법 맹랑한 말이었다. 하긴 거의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다 못해 마법으로 훑기까지 했다. 숨겨놓은 공간은 물론이고, 암묵적으로 버려진 곳까지 들락거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옷자락 하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점점 더 불안해진다. 하나둘 포기하잔 목소리가 높아졌다. 물론 그레이브스는 마쿠자의 중요한 일원이지만 언제까지 모든 사람을 동원해서 찾을 수 없었다.

“…….”

“어떡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

“혼란스럽군요. 이 정도면 작은 단서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더는 들키지 않고 움직이기도 벅찹니다. 많은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마법 사회 노출도가 심각하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어요.”

“그린델왈드의 협조를 바라는 것은 더는 무의미합니다.”

“…….”

“그러니…….”

“티나를 불러오세요.”

“…네?”

뜻밖의 말이었다. 약간 놀란 투로 되묻던 남자는 금방 이해했다. 피쿼리가 그레이브스를 포기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마법 사회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맞았다. 둘 중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포기하진 않겠지만 어려운 일이군요.”

“…….”

“하지만 티나라면 잘 해주리라 믿습니다.”

“…….”

그레이브스를 찾기 위해 투입된 인력은 티나와 몇몇을 빼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법 사회가 노출되는 일은 빈번했고, 늘 불안했다. 아무리 천둥 새와 망각 약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함은 계속되었다. 마법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 하지만, 큰일을 겪은 뒤라서 더 예민했다.

물론 갑자기 일을 떠맡은 쪽은 당황스울 뿐이다. 명령이 내려오면 그대로 실행해야 하는 오러지만, 모든 일을 일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티나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 앞에 앉은 퀴느는 다 안다는 표정이지만,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걸까.”

“그거야…….”

“모든 마쿠자 일원이 다 일어서서 찾아도 실패한 국장님을 어디서 찾으라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을지도 몰라.”

“그게 어딜까.”

“난…모르지.”

“…….”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도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고작 둘이 고민해봤자 마찬가지였다. 늘 했던 것처럼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티나는 제출할 보고서에 한 줄도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한 보고가 들어왔다.

“그게 무슨 소리죠?”

“오래된 저택에서 이상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고 하더군.”

“예?”

“나도 확실히 몰라. 노마지가 사는 집인데 다행히 현재는 비어있다는 소리까진 들었지. 가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야.”

“…….”

“아마 국장님 일과 관련이 있을 수 있어. 가보도록 해.”

“…네.”

티나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한 번쯤 반문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일단 그곳에 가보면 무슨 일이든 한 발짝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자코 출장을 준비하는 동안 자꾸 가슴이 쿵쾅거렸다. 괜히 손이 떨리고 예전이라면 꼭 챙길 것도 자꾸 빼먹었다.

“티나. 이거.”

“아.”

“많이 떨려?”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겠지?”

“아마 그곳에 가면 확실히 뭔가 만날 것 같아.”

“미래 예언도 할 줄 알아?”

“아니. 그냥 내 느낌.”

“그래. 뭐라도 일이 있어야지.”

“잘 될 거야.”

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계속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쁜 생각을 하면 잘될 것도 빗겨나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국장님은 늘 단단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제법 묵직한 가방을 든 티나는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

 

 

“뉴트?”

“…어, 티나?”

“당신이 어떻게.”

“당신이 왜…….”

“…….”

“…….”

낯선 곳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똑같이 한 손엔 여행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깜박였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 저 그게.”

“…여길.”

“그…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찾는…사람이요?”

“네. 저한테 아주 중요한…사람이죠.”

“…….”

“티나는 무슨 일로?”

뉴트가 눈을 깜박인다. 여전히 시선은 약간 어긋나있었다. 짙은 올리브색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호기심을 표한다. 티나는 잠깐 뉴트가 마쿠자 오러인 줄 알았다.

“저도…사람을 찾으러 왔죠. 마쿠자 일이에요.”

“아…….”

“여길 어떻게 알았죠?”

“…….”

“이건 마쿠자에서도 몇 명밖에 모르는 일일 텐데.”

“그게…….”

“뉴트?”

“…….”

“내가 당신을 의심하게 하지 말아요.”

“그런 건 아니에요…그러니까.”

“…….”

“그레이브스씨를 찾아왔어요.”

“…네?”

뜻밖의 말이었다. 뉴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티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그 순간 숲 전체가 울렁거리듯 움직였다. 꼭 살아있는 점액질처럼 천천히 움직이던 것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상황이 더 위험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동식물에 조금 더 익숙한 뉴트가 먼저 손을 뻗어 저지했다.

“티나. 잠시만.”

“…….”

“여기선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요.”

“…….”

“아까 가방 떨어뜨릴 때 봤죠? 가방에 마법이 소량 남아있어서 숲 전체가 반응하는 거예요.”

“도대체…그걸 어떻게.”

“나중에 이야기해줄게요. 지금은 날 믿어줄 수 있을까요?”

“…….”

몇 번 만나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던 시선이 오랜만에 맞닿았다. 뭔가 확신에 찬 얼굴로 티나는 바라보던 뉴트는 조금이라도 더 말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대화를 하는 것은 역시 버거운지 결국 뒷머리를 긁으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럼 이리로 와요.”

“…네?”

“난 마쿠자에서 왔다고 했잖아요. 저쪽에 작은 안전 가옥을 마련해뒀어요.”

“…….”

“뭐, 안전가옥이라고 해봤자 다 쓰러져가는 움막 정도겠지만. 그래도 저 안에 가방을 두고 안으로 들어가는 편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난.”

“그거야…나중에 보고하도록 하죠. 일단 이곳에 당신이 왜 와있는지 보고하는 것도 내 임무에 들어갈 테니까요.”

“…….”

“어서. 뭐해요?”

“네, 알겠어요.”

뉴트는 결국 티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처음 뉴욕에 올 때도 들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든 채 얌전히 뒤를 따랐다. 티나가 만한 것처럼 간신히 몸을 숨길 정도의 쓰러져가는 벽이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추정하기론 예전에 쓰다 버려진 고용인들의 집이 아닐까 했다. 겨우 한시름 놓은 티나는 발목을 주무르며 뉴트를 바라보았다. 제풀에 찔린 것처럼 펄쩍 뛰어오른 뉴트는 내내 눈치를 살폈다.

“이제 말해 봐요.”

“…….”

“도대체 여길 어떻게 왔어요?”

“그거야.”

“분명 배에 탔잖아요.”

“내렸죠.”

“…네?”

“그대로 가려고 했는데, 역시 안 될 것 같아서요. 아무 말 하지 않고 돌아와서 미안해요.”

“…….”

“아무리 생각해도 그레이브스 씨는 뉴욕에 있을 것 같아서…떠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도대체 당신이 국장님을 어떻게 아는지. 무슨 인연인지. 티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하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 분명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뉴트가 눈앞에 있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마쿠자도 간신히 찾아낸 곳을 단번에 알아냈다는 것도 신기할 뿐이었다.

“알 수 있으니까 왔어요.”

“네?”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

“그 사람을 느낄 수 있고,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그래서 그린델왈드를 알아본 건가요?”

“어쩌면요.”

“…….”

“완벽하게 증거를 잡진 못했으니까. 절반의 확률이었죠.”

“그럼…어떻게.”

“그 사람 좀 고압적이고 무섭긴 해도, 남을 깔아뭉개는 걸 즐길 성격은 아니에요.”

“…….”

“하지만…여긴 티나 혼자 돌파할 수 없어요.”

“뉴트. 그게 무슨…….”

“너무 위험해요. 동물과 식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나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니까요.”

“잠깐…뉴트!”

“그레이브스 씨는 내가 구해올게요. 잠시 쉬고 있어요.”

“…….”

“내가 가야만 해요.”

정말 제멋대로였다. 티나는 순간 눈앞이 핑글 돌았다. 무슨 마법인지. 아니면 약을 쓴 건지. 의식은 몽롱하고 기분 좋게 가라앉으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뉴트는 뒤로 천천히 쓰러지는 티나를 안전하게 눕혔다. 혼자서 조용히 처리하려 했는데,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조심조심 움막에서 벗어난 뉴트는 가방을 콱 쥐었다. 급하게 오느라 아이들을 그대로 데려온 것이 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자기 몸은 지킬 줄 아는 녀석이었다. 티나 옆에 조심스럽게 가방을 세웠다. 가방이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 두었으니, 또다시 뉴욕에 신비한 동물이 나타나진 않는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위험한 곳에 데리고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뉴트가 걸어 나오자 저택 전체를 감사고 있던 기운이 곧장 반응한다. 꼭 살아있는 것처럼 뭉글뭉글 움직이며 뉴트를 쫓아다닌다. 꼭 노려보는 기분이 들었다. 눈도 없는 것은 공기 흐름을 무시한 채 뉴트를 따라 움직였다. 영국인 마법사는 계속 주위를 크게 돌면서 출입구를 찾았다. 아무리 견고한 마법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틈이 있다. 마법과 마법이 맞물리는 지점인데, 이런 식으로 저택 전체를 살아있는 생물처럼 감싸려면 꼭 생기는 약점이었다.

“어디 보자.”

저벅. 저벅.

“날 안쪽으로 들여보내 줘. 네가 가지고 있는 걸 돌려받아야 하니까.”

뉴트는 자세를 낮춘 채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오래 드나들지 않아 오랫동안 쌓인 낙엽이 신발에 밟혀 부스러졌다. 큰 저택치곤 사람의 손이 닿은 지 오래된 공간이었다. 하긴 그런 곳이었으니 그린델알드가 둥지를 틀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결계는 견고했다. 차라리 움직임을 따라 사납게 덤비는 방어 마법이 쉬울지도 몰랐다. 있는 듯 없는 듯 모든 공간을 집어삼킨 채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뉴트는 마법보다 동물과 식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을 감싼 마법은 동물에 가까웠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사정없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

“난 너같이 말썽꾸러기인 아이들을 항상 보고 살았어.”

“…….”

“그냥. 길을 열어줘.”

“…….”

“물론 열어주지 않아도 갈 거지만.”

뉴트의 지팡이가 닿을 듯 말 듯 결계 주변을 맴돌았다. 분명 작은 틈이 있을 텐데,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법이 워낙 강력하고 크기가 큰 까닭일까. 뉴트는 몇 번이나 넓은 숲을 빙빙 돌았다. 아무리 완벽하게 결계를 친다 하더라도 수많은 나무와 돌을 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린델왈드의 마법에 대해 새삼스레 놀라던 뉴트는 아주 작은 틈새를 발견했다. 물론 사람이 들어가긴 좀 버거운 크기였다.

“내가 동물 잡으러 다닐 때 이런 짓 많이 했는데…….”

뉴트는 아슬아슬하게 결계 밖으로 빗겨선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팡이로 뿌리 부분을 겨누었다. 나무가 쓰러지면 결계에 구멍이 생길 테고, 그 틈을 타 안쪽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물론 이 넓은 곳에서 겨우 찾아낸 곳인 만큼 딱 한 번밖에 기회가 없었다. 안쪽에서 마법을 깨지 못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이 고생할 것이 뻔했다. 뉴트는 바짝 마른 입술을 자꾸 핥았다.

“아냐. 날 믿어야지.”

사람 사이에 있으면 당장 도망치고 싶은 표정으로 사회성 없이 굴던 남자는 오간 곳이 없었다. 올리브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동물을 볼 때도 이런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가장 깊은 곳에 있으리라 확신하는 사람 때문일까. 뉴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파하는 사이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숲속에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밑등부터 부러진 나무가 천천히 기울다 완전히 넘어졌다. 그 순간 결계가 일렁이며 틈이 벌어졌다. 뉴트는 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몇 번이나 바닥을 뒹굴었다. 단단한 둥치에 발이 걸리는 느낌이 들더니 잔뜩 쌓인 낙엽과 이끼에 얼굴을 처박았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넘어간 나무는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만들었다. 한순간 다시 조용해진 숲속은 가만가만 새소리가 들렸다.

“아…아야야.”

일단 구르고 나니 뒤이어 아픔이 찾아왔다. 팔꿈치도 아프고, 둥치에 걸린 발목도 영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웅크리고 있을 수 없어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미 풀물과 흙먼지가 잔뜩 묻은 파란 코트는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뉴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코트 자락을 툭툭 털었다. 다행히 그 난리를 겪는 동안 지팡이가 부러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지팡이를 입술로 문 채 주변을 돌아본다.

“…….”

지팡이를 이렇게 다루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 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한소리 했을 것이 분명했다. 뉴트는 그대로 선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계 안으로 들어오니 마법 흐름이 좀 더 확실히 느껴졌다. 사방으로 퍼져있는 결계는 한 곳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쪽이네.”

뉴트는 중심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결계만 돌파하면 안쪽은 그리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어디서 옮겨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수상한 식물이 가득 들어찬 곳은 마치 전쟁터 같았다.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이건.”

뉴트는 발 바로 옆에 구물거리는 두꺼운 가시넝쿨을 바라보았다. 마법으로 조종하는 식물 중 하나인데, 누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면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넝쿨을 움직이며 이리저리 얽어버리는 녀석이었다. 뉴트는 반 발자국 물러섰다. 다행히 식물은 아직까지 뉴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두껍고 커다란 본체는 바깥에서 영양분을 조달하는 것 같았다. 조심조심 안쪽으로 들어가니 잔가지들이 잔뜩 얽혀 있었다. 꼭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것 같기도 했고, 가둬두는 것 같기도 했다. 뉴트는 사람 하나 지나갈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가시덩쿨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꼭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아니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세상 오지를 헤매고 다닌 동물 학자라고 하더라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너무 익숙했다. 손끝으로 살살 넝쿨을 쓸어내린다. 생각 외로 얌전했다. 당장 미친 듯 움직이면 좀 더 고생할 것 같은데, 다행이었다.

“그린델왈드가 체포되고 나서…이쪽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모양이네.”

뉴트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작정 들어온 것 치곤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꼭 한마디씩 뒤에 따라오곤 했는데, 지금은 뒤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뉴트는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고 했지만, 아주 가끔은 머뭇거리곤 했다.

“영양분이야 땅에서 직접 끌어오니 괜찮은거 같고. 하지만 지휘할 머리를 잃어서 그냥 빽빽하게 공간만 채워두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렇다고 마구 헤집기도 좀…….”

동물 학자는 생각이 많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을 다루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식물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진 지 알 수 없어서 더 그랬다. 아마 이곳을 지나면 바로 그린델왈드의 숨겨진 공간일 것 같은데, 그 한발자국을 넘기가 참 힘들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조심조심 가시넝쿨을 밀어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줄기는 쉽게 움직이지만 빼곡하게 돋은 가시가 사라지진 않았다. 몇 번이나 손끝을 찔려가면서 넝쿨을 걷어낸다. 팔이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뭐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뉴트는 잔뜩 생채기가 난 손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야 그리 심한 상처도 아니고, 더 다쳐도 별로 상관없었다. 용을 다를 때는 이것보다 더 흉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계속 허송세월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지.”

조심조심 마법으로 넝쿨을 밀어냈다. 당장 부스러질 것처럼 바짝 마른 넝쿨이 순간 원래 색을 찾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마법을 빨아들이는 용도로 사용하던 식물이 맞는 듯했다. 뉴트는 간신히 몸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만든 뒤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좁은 곳을 헤치고 나아갈 때마다 온몸에 생채기가 생겼다. 코트에 툭툭 걸리는 가시는 자꾸 가는 길을 방해했다.

간신히 빠져나왔을 땐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부스스한 머리는 누군가 쥐어뜯은 모양이었고, 얼굴엔 상처가 가득했다. 뉴트는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은 그레이브스를 찾는 도중이니 최대한 마법사용을 자제하고 있지만, 돌아갈 땐 절대 이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레이브스?”

“…….”

대답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레이브스! 퍼시!”

“…….”

“거기 있어요?”

“…….”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땅에 길게 뻗은 줄기를 따라가면 마력의 끝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헤치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던 곳을 통과하니 안쪽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안전한 공간이란 소리는 아니었다. 뉴트는 고작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그동안 몸에 해가 되는 식물을 몇 가지나 발견했다. 일부는 이젠 찾기도 힘든 종류였고, 특히 마법사에게 치명적이었다. 어디서 이런 걸 모아둔 건지. 갑자기 기분이 나빴다.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물론이고, 안쪽에 있는 사람도 위험하게 만들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어디까지 가야 하지.”

약간 초조해졌다. 한없이 걸어도 도통 가까워지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결계 안쪽을 공간으로 설정해 확장 마법이라도 걸어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막막할 리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나는 위험한 공간은 어쩐지 끝없는 어둠 같았다. 투명한 결계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우거진 나뭇잎 모양 그늘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평범한 날과는 조금 달랐다.

“그레이브스!”

“…….”

“퍼시!”

“…….”

“대답해봐요!”

“…….”

“당신을 데리러 왔어!”

목소리가 기폭제가 된 걸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공간이 뚝 끊겼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니 가시넝쿨이 가득한 평지 가운데 움푹 들어간 늪지가 있었다. 뉴트는 가만히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흐릿한 안개가 고여 있는 늪 가운데 누군가 있었다.

“퍼시!”

“…….”

“퍼시?”

“…….”

몸이 물에 반쯤 잠긴 패 가시넝쿨에 감겨있는 남자는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던 얼굴이기도 했다. 뉴트는 당장에라도 늪에 걸어 들어갈 것처럼 급히 다가섰다. 하지만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린델왈드가 만든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도.”

“…….”

“잠깐.”

뉴트는 눈을 가늘게 찌푸린 채 늪을 바라보았다. 결계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뉴트가 고민하던 그 순간 그레이브스가 움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뉴트는 이미 늪 속에 들어와 있었다.

퍼시. 그레이브스.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다행히 늪은 깊지 않았지만, 자꾸 다리를 옭아맨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마법 덩어리를 헤치며 간신히 그레이브스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여 그대로 덥석 껴안아버렸다.

“세상에…….”

그린델왈드와 얽혀서 좋은 꼴을 당한 사람은 없다지만, 상상보다 더 심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까칠하게 살이 내렸다. 뉴트는 한 손으론 그레이브스를 붙잡고, 다른 손으론 얼굴을 쓸었다. 일단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넝쿨에 얽힌 몸을 끌어당겼지만, 뉴트의 힘으론 어림도 없었다. 사실 용을 관리하던 입장에서 어느 정도 힘쓰는 것엔 자신이 있었지만, 단단한 나뭇가지를 뿌리치기엔 좀 부족했다. 이젠 앞뒤 구분할 처지가 아니었다. 뉴트가 입에 물고 있던 지팡이를 간신히 잡았다. 그리고 크게 원을 그리며 주문을 외웠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가장 굵은 나뭇가지라 뚝 부러졌다. 그 순간 새빨갛던 늪이 한순간 까맣게 타버렸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레이브스의 몸을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의식 없이 축 늘어진 몸을 껴안은 채 낑낑거리며 늪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늪에서 간신히 벗어나서 그레이브스의 몸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건.”

그린델왈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한없이 잔인한 사람이었다. 넝쿨을 그저 몸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레이브스 몸 곳곳에 뚫린 작은 구멍을 바라보던 뉴트는 절로 눈을 찌푸렸다. 그레이브스의 몸에 새겨진 고통은 하나하나 찾아내기도 힘들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요. 퍼시.”

“…….”

“나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레이브스가 뭔가 스위치라도 된 것인지. 방금까지 멀쩡하던 공간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새까맣게 죽어가는 넝쿨이 아래부터 바스러지면서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잔뜩 지친 몸으로 자기만큼 무거운 남자를 데리고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몇 걸음 움직이던 뉴트 머리 위로 넝쿨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결계도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뉴트는 그레이브스를 껴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

 

 

꿈은 항상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꿈을 꾸거나 미래를 본다고 하던데, 뉴트는 자꾸 과거로 돌아가기만 했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집으로 돌아왔을 때. 테세우스가 있을 때. 그리고 호그와트에 처음 들어간 날까지. 천천히 거꾸로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면 늘 비슷한 곳에서 꿈이 멈춘다. 뉴트는 이젠 익숙한 듯 주변을 둘러본다.

“…….”

퍼시. 그레이브스. 어린 뉴트가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늘 숫기가 없어서 걱정이라는 형의 말과 달리 제법 잘 웃는 아이는 덥썩 남자의 품에 안겼다. 그럼 자연스럽게 뉴트를 안아 든 남자가 방으로 걸어간다. 걸어가서 계단을 오르고. 다시 복도를 걷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뉴트의 침실이었다.

“…….”

뉴트는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내가 아는 그레이브스는 이러지 않은데. 어린 뉴트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이불에 푹 파묻혔다. 꿈속에서 움직이는 남자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꺼내 들었다. 몇 번이나 읽어주던 책이었다.

“싫어요. 안 잘래요.”

“…….”

“퍼시. 난 아직 안 졸려요.”

“…….”

“흐응.”

하지만 소리 없이 움직이는 입 모양을 보고 있으면 잠이 쏟아졌다. 꿈은 원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어린 뉴트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 공간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마치 불가항력처럼 그레이브스다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잠시 뉴트의 이마를 쓸어주던 손이 떨어졌다.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매끄러운 동작이었다. 그레이브스의 곧은 손가락이 다시 책장을 넘겼다.

“…….”

꿈속에서 다시 잠이 들다니. 뉴트는 이상했다. 하지만 자꾸 자신을 재우려는 행동을 거부할 수 없었다. 커다란 침대 위에 볼록 솟아오른 이불이 자꾸 뒤척거렸다. 그레이브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그의 손엔 두껍고 고급스러운 책이 들려있었다. 뉴트는 졸음이 쏟아지는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도대체 소리 없이 읽어주는 책이 뭘까. 궁금했지만 좀처럼 알아볼 수 없었다.

“…….”

뭔가 알아차렸다고 생각했을 때, 뉴트는 침대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점차 빛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한없이 아래로 낙하했다. 순간 출렁거리는 검은 물질에 닿은 것 같았다. 아. 꿈속 꿈의 끝은 이런 건가 봐. 이런 생각을 했다.

 

 

***

 

 

“뉴트?”

“…….”

“뉴트 스캐맨더.”

“…….”

“스캐맨더?”

“…….”

“뉴…….”

흐릿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눈꺼풀이 움찔움찔했다. 하지만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는 지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침대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무거운 한숨을 쏟아냈다. 흔들어 깨울 수도 없는지 이불만 꾹 쥐었다가 다시 놓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밤이 되도록 옆을 지키던 남자는 주변 사람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집요정도 있고, 필요한 고용인도 모두 있는 곳에서 굳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많았다.

“난 괜찮다니까.”

“…그건 국장님 생각이시고요.”

“흠.”

“몸도 성치 않으신데 계속 그렇게 앉아계시면 더 큰 일 납니다.”

“그래도…….”

“스케맨더 씨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연락드릴게요.”

“참.”

“국장님. 몸부터 챙기세요.”

“…….”

그레이브스의 얼굴에 그늘이 생긴다. 물론 스스로 괜찮다고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그레이스의 몸 상태는 영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것도 자신의 집으로 옮겨진 후였다. 티나의 요청으로 도착한 사람들은 세상 처음 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멀쩡히 임무를 받고 나갔던 티나는 무언가에 중독된 채 방금 정신이 들었고, 완전히 무너진 마법 결계를 온몸으로 받아낸 두 사람은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둘 중 한 사람은 그린델왈드에게 잡혀있던 그레이브스였고, 다른 한 명은 이미 뉴욕을 떠난 것으로 되어있는 영국인 마법사였다. 티나에게 상황보고를 하라고 요청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곳에 둘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결계를 사라지고, 마법으로 조종하던 식물은 모두 말라비틀어졌다지만, 그린델왈드가 어떤 함정을 숨겨놨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뉴트 스캐맨더는 이번 사건의 중요 참고인으로 함께 옮겨졌다. 당장 구할 수 있는 숙소가 없어 그레이브스 국장의 자택으로 온 것인데, 이상하게도 집요정 무리는 뉴트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깨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오러가 향한 곳은 강제로 쉬고 있는 그레이브스의 방이었다. 아직 상한 몸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레이브스는 늘 꼿꼿했다.

“아직 스캐맨더 씨가 깨어나지 않아 국장님 먼저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아직 불편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그게…….”

“뒤에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

“시작하지.”

그레이브스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성격과 다르게 해줄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레이브스의 기억은 그린델왈드에게 납치되었던 순간에서 끊겨있었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자신의 집이었다. 흐릿한 기억을 붙잡았지만 결계 안에 있는 동안은 뚝 끊긴 것처럼 비어있었다.

결국, 뉴트 스캐맨더가 일어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짧은 대화가 끝났다. 그레이브스는 다시 뉴트가 누워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금방이라도 깰 것 같던 녀석이라 생각했다. 퍽 걱정이 된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하지만 그레이브스가 보기엔 늘 어린애 같았다.

“뉴트.”

“…….”

“스캐맨더?”

“…….”

“이제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

“내가 자네 걱정 그만하게 해주게.”

“…….”

“뉴트?”

간절함을 담아 불러본다. 물론 남이 듣기엔 목소리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눈꺼풀이 움직였다. 꼭 그레이브스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 같아 다시 한번 이름을 말해본다.

“…퍼시?”

“…….”

“퍼시?”

“자네는 언제나 날 걱정하게 하더군.”

“깨어났네요?”

“지금까지 자고 있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거 같아.”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에요.”

“…….”

“다행이다.”

뭐가 좋은지 손끝만 간신히 움직이면서 연신 웃는다.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녀석을 침대에 기대게 한 후 베개를 받쳐준다. 끙. 짧은소리를 내며 몸을 들썩이던 남자는 결국 포기한 채 고개만 저었다. 뭘 했는진 몰라도 마비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무모한 건 언제나 똑같군.”

“난 언제나 같아요.”

“…누가 그렇게 마음대로 행동하라 했지?”

“그야 마쿠자 오러가 들어갔으면 더 큰 피해가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마음대로 티나를 재웠고?”

“…….”

“뉴트?”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허어.”

“당신도 무사히 구했으니 된 거…아니.”

“…….”

“아닌가 봐.”

“응?”

뉴트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그레이브스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레이브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무사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는지, 얼굴엔 자잘한 생채기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 뉴트를 달래기라도 하는 듯 그레이브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별거 아니야.”

“매일 그런 말을 하더라.”

“정말인걸.”

“…….”

“왜 다시 돌아왔지?”

“거기까지 들었어요?”

“일단은. 이제 들어야 할 일도 많고.”

“…….”

“뉴트?”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 텐데.”

“…….”

뉴트는 꼭 대화를 어물어물 끊어버린다. 그런 성격을 잘 아는 그레이브스는 조금 더 당겨 앉았다. 천천히 볼을 쓸어주다 등을 토닥인다. 조금씩 마비가 풀리기 시작하는지 뉴트의 손이 그레이브스를 덥석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것 치곤 참 웃긴 상황이었다.

“고마워.”

“…….”

“날 찾아줘서.”

“퍼시를 못 찾을 이유는 없죠.”

“내가 그 안에 있을 거란 건 어떻게 알았지?”

“그게 중요해요?”

“응?”

“…….”

뉴트는 그레이브스의 품에 이마를 댄 채 조용조용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인사부터 해야 할까. 아니면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할까. 사실 그레이브스는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끔 헷갈리기도 했다.

품에 안고 토닥이던 손이 어느새 볼에 닿는다. 주근깨가 가득 박힌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더니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꼭 아이에게 하는 것 같아 가만히 고개를 저었지만, 뿌리치진 않았다. 이마에 닿았던 입술이 콧대에 닿고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으응. 짧은 콧소리가 섞이더니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

“무사해서 다행이야.”

천천히 떨어진 입술이 다시 한번 뉴트의 안부를 물었다. 금방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꼭…….”

“꼭?”

“예전에 읽었던 동화 같은데…이런 느낌은 아니지만.”

“동화책?”

“퍼시가 읽어줬었죠.”

“내가 그랬던가.”

“…….”

짐짓 모른 체하지만 숨길 순 없었다. 굳이 책 이름을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뉴트는 아직도 달아오른 볼을 한 채 수줍게 웃었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이 차가 많이 난다는 걸 이런 식으로 깨닫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레이브스의 눈엔 언제나 뉴트는 어리고 또 어렸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뒤에 무슨 대답이 따라 나올지도 알고 있었다.

“옛날엔 어렸지만 지금은 내가 더 튼튼할걸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건가.”

“그럴지도 모르죠.”

“구해준 걸 고맙게 생각해.”

“옛날 동화책에서 본 장면이 이런 건가 생각도 들고.”

“…….”

“그렇게 당신을 발견했는데,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했어요.”

“이 집에 와서 나도 같은 생각을 했지.”

“키스해서 깨워야 하나.”

“…….”

“아니면 저주를 풀어줄 요정을 찾아야 하나.”

“…….”

“생각도 많았고…아 거기 안에서요.”

“내가 먼저 해줄 걸 그랬군.”

“그러면 바로 일어났을 텐데.”

“못 본새에 농담이 늘었어. 뉴트.”

그레이브스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하자 또 얼굴이 달아오른다. 고분고분 안겨있던 뉴트가 어느새 그레이브스의 목을 끌어당겼다.

“이제 늘 그랬던 것처럼 훌쩍 영국으로 돌아갈 건가?”

“안될걸요.”

“…….”

“내가 저지른 일이 좀 많아서.”

“그거 잘됐군.”

묘한 소유욕이 느껴졌다. 뉴트는 그냥 웃기로 했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몇 번이나 외울 만큼 읽은 동화책이었지만, 그레이브스가 가끔 스캐맨더 저택에 올 때마다 읽어달라고 했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녀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남자는 늘 침대 곁에 앉아 뉴트가 잠이 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잠이 들지 않으려 했지만, 늘 왕자가 가시넝쿨을 바라보는 부분에서 기억이 끊기곤 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이미 아침이었고, 읽다가 만 동화책은 언제나 베개 옆에 놓여 있었다. 그레이브스는 학생 때부터 바쁜 사람인지라 아이의 아침잠을 기다려 줄 수 없었다. 홀로 남겨진 방은 꼭 동화책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물론 마법으로 만든 가시넝쿨도 무서운 괴물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방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뉴트는 충분히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읽는 동화책은 영 재미가 없었기에 그레이브스의 방문을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앞 내용만 수두룩하게 읽어 모서리가 닳기 시작한 책은 어느 순간부터 책장에 계속 꽂혀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오늘은 늘 읽어주던 동화의 마지막 부분을 듣고 싶은 걸요.”

“몇 번이나 읽어주지.”

“무슨 책인진 알고 하는 말이죠?”

“물론.”

“기대할게요.”

“오늘은 다 읽을 때 까지 못 자게 할 건데, 참을 수 있겠어?”

“항상 이야기하지만, 이젠 내가 당신보다 튼튼해요.”

“그 말 새겨듣지.”

온몸에 상처를 달고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마법사 두 사람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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